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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내 하루.

마지막 선물.

 어제는 언니가 세상과 이별한지 3년이 되는 날이였습니다.

 

 

2012년 5월 17일 이날은 낭군과 저의 결혼 기념일이였습니다. 

그 해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던지라 항상 늦잠을 잤었지요.

그런데 일곱시쯤 친정엄마한테 온 전화목소리가 다급했습니다.

언니가 새벽에 수원에서 해남으로 내려가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는..

지금 수술중인데 생사를 알 수 없다고.....

 

전화를 끊고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니 새벽부터 엄마는

그나마 경기도 지역이라 가까운 저에게 계속 전화를 했었는데,

그걸 모르고 달디단 꿈에 젖어 애끓는 엄마마음의 벨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타고 오산역에 도착해서 오산 한국병원으로 갔더니... 

그 새벽에 서둘러 해남에서 출발한 부모님, 그리고 동생은 이미 눈물바다였습니다.

 

주치의의 "더이상 가망이 없다"는 말은

이세상에서 처음 들어본 말처럼 되뇌이길 여러번......

 

중환자실에서 퉁퉁 부은언니의 얼굴을 보고

이틀전 어버이날 못가서 늦게나마 해남간다며 들떠있던 언니의 목소리가

언니와의 마지막 통화였구나... 싶었습니다.

 

의사는 퇴근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야 하는건가요..

정신 없는 부모님을 모시고오셨던 지인이 조심스럽게 저희 가족을 모아 얘기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먼 길을 떠난다.

다만 가는데 순서 없듯 마음아프지만 언니가 먼저 떠날 예정인데,

떠나면 태워 없어질 건강한 신체일부라도 기증하고

더 뜻있게 가족을 보내는게 어떻겠는지.."

 

그 말에 누구도 "싫다", "안된다" 라는말은 하지 않았지만

 "좋다","그렇게합시다"라는 말도 쉬이 나오지 않았지요.

 

 

"나는 내 딸이 어디에선가라도 살아있으면 좋겠네만

자네 생각이 가장 중요한것 아니겠는가.."

엄마는 형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산에서 하루가 지나고

형부의 선택에 언니는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옴겨졌습니다.

그리곤 3일간의 검사뒤 5월21일 정오쯤 뇌사판정이 내려졌고,

눈물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잘 기억나지 부모님과 형부의 서명 뒤

엄마는 가족을 모았습니다.

 

엄마는 오래 생각 하셨나봅니다.

언니에게 줄 마지막 선물을요....

 

"내가 먼저가는 딸 장례식에 앉아있을 수나 있것냐..

나랑 아빠는 해남 갈란다. 그 전에 우리도 장기기증 서명이라도 하자.

뭣도 안되겠지마는 이것말고는 가는 딸을 위해서 할 수 있는것이 없다."

 

엄마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누구 할것없이 다 울었습니다. 그리고 동의 했지요. 

 

 

그리고 21일 늦은저녁 언니는 장기기증 후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몇명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성공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쓸 수 없어 마음조리고 태웠을 단한명의 가족이라도

희망을 보았다면 참 다행이겠구나....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엄마가 딸을 보며 느꼈을 마음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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